다발성골수종 질환을 겪고 있는 울 엄마는 6개월 간의 항암 집중 치료 후 기적처럼 호전되어 현재는 집에서 일반 약만 복용하며 3개월 마다 정기검진을 받고 있다. 특히 다발성골수종은 완치가 없는 질환으로 재발 가능성이 매우 크기 때문에 꾸준하고 세심한 관리가 중요하다. 다소 회복의 기미가 보인다고 방심할 수 없고, 혹여 재발이 되었을 때를 대비하여 병과 싸울 수 있는 건강한 몸을 미리미리 만들어놓아야 한다. 현재 엄마의 상태는 항암치료 후 근력이 다 소실되어 거동이 어렵고 몸무게도 이전보다 약 20킬로그램이나 빠져 계신다. 평생 요린이로 살아왔던 내가 어쩌다보니 엄마를 보살피게 되어 완전히 잃어버린 엄마의 입맛과 건강을 되찾아드리려고 고군분투하고 있다.
2022년 2월 24일 엄마를 위한 오늘의 밥상
게살계란볶음밥, 내장탕, 소고기안심구이, 깍두기, 무나물, 단무지, 고추장멸치볶음, 샐러드
오늘 특별히 새롭게 해본 음식은 게살계란볶음밥과 깍두기, 소고기안심구이다. 모든 메뉴가 엄마 입맛을 돋구는데 기여했지만, 무엇보다도 엄마를 기쁘게 한 건 바로 깍두기다. 맛있는 김치 담그기로 누구보다 자부심을 갖고 계셨던 엄마가 지난 가을인가 처음으로 함께 깍두기를 담아보자고 하시길래 설레는 마음으로 평생 처음 도전했다가 처참하게 실패했던 경험이 있었다. 그 후 엄마나 나나 깍두기 자체가 금기어나 다름 없어서 서로 외면만 했었는데 작년 김장철에 이집 저집에서 갖다준 배추김치가 드디어 바닥을 드러내고 있어서 다시 용기를 내지 않을 수가 없었다.
사실 엄마가 입으로 코치만 하고 요린이인 내가 만드는 건 처음부터 한계가 있었다. 무를 썰 때 엄마는 자르는 법을 정확히 말로 표현하지 못했다. 오직 자신이 직접 손을 쓰지 못하는 걸 답답해할 뿐이었다. 양념을 할 때도 엄마는 정확한 양을 얘기해주지 않았다. 엄마의 '조금'과 '많이'는 나를 계속 짜증나게 만들었다. 조금 넣으라고 해서 조금 넣으면 더 많이 넣으라고 그러고 많이 넣으라고 해서 많이 넣으면 '어어어 그만그만'하고 짜증을 냈다. 엄마는 평생 김치재료를 하나하나 계량을 하고 담궜던 분이 아니다. 그냥 감으로 담궜던 분이라 나를 아바타로 세우고 김치를 담근다는 건 애시당초 무리였다. 그래서 그 깍두기는 처참한 몰골로 두번다시는 찾지 않는 곳에 깊숙히 숨겨졌다.
해서 이번엔 내가 사전에 열심히 공부를 하기로 했다. 유튜브에 올려져있는 대부분의 깍두기 동영상을 다 섭렵했다. 그 중 요리재료도 다 있고 비교적 쉽게 만들면서 금방 먹을 수 있는 레시피로 말이 필요없는 백종원님의 깍두기 동영상을 원픽하기로 했다. 그리고 엄마를 앞에 앉게 하고 내가 백종원님의 레시피를 따라하는 걸 지켜보시게 했는데 절임과 양념만들기 순서마다 엄마가 적절한 양념의 양과 비법으로 훈수를 둬주시니 훨씬 수월하게 깍두기를 만들 수 있었다. 그리고 역시 그 결과는 대성공! 깍두기 사진의 빛나는 색깔을 보라. 식감과 맛은 또 얼마나 죽이던지 무 2개로 2주일은 먹겠구나 했는데 아무래도 길어도 5일 안에 끝을 볼 것 같다. 역시 백종원님은 우리들에게 먹을거리를 베풀어주시는 정말 고마운 분이다.
나의 원픽레시피
깍두기
유튜브채널 <백종원의요리비책>https://youtu.be/sRQxVQ5-NNA
---> 백종원님의 요리비법을 기본적으로 따라하되 밀가루풀 대신 찹쌀풀을 쒔고 절임 재료나 양념의 양은 먹어보면서 좀 덜 짜고 덜 달게 만들었다.
게살계란볶음
게살계란볶음: 유튜브채널 <강쉪> https://www.youtube.com/watch?v=tLUcFrIq3LI
---> 강쉪의 요리비법을 그대로 따르면 되는데, 난 색감을 더 주기 위해 집에 있는 당근이랑 파프리카를 잘게 썰어넣어줬다. 강쉪님의 얘기대로 그동안 킹크랩 게살로 만들어본 요리 중 단연 으뜸이었다. 단, 이 요리는 다른 음식들보다도 바로 만들고 먹어야 더 그 풍부한 맛을 즐길 수 있을 듯하다. 이 요리를 해놓고 소고기 구이를 하느라 좀 식혀버렸더니 처음 만들었을 때의 그 환상적인 맛이 살짝 사라진 것 같아 아쉬웠다. 다음번엔 노하우가 쌓여서 더 맛있게 먹을 수 있을 듯. 꼭 또 해먹고 싶은 요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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