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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중음성유방암 투병일기

[삼중음성유방암 투병일기7] 삼중음성유방암 재선고: 선항암 결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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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3년 9월 20일: 서울대병원 외래, 삼중음성유방암 재선고, 선항암 치료 확정, 세종충대병원 전원요청

 

삼중음성유방암 재선고

 

드디어 그날이 왔다. 이제까지 그냥 무덤덤하게 내 몸 속에 들어온 유방암을 받아들였는데, 오늘은 정말 가슴이 두근거릴 정도로 긴장이 됐다.

 

오전 9시가 예약시간이라 오늘도 새벽 5시 반부터 집을 나섰다. KTX를 타고 서울대병원에 도착한 시간은 오전 8시 반. 다른 환자들보다 일찍 도착한 터라 두 번째 대기 번호를 받고 얌전하게 진료실 앞을 지키고 앉았다.

 

9시가 다 되어 의사선생님이 그 날씬하고 키 큰 모습을 드러냈다. 곧이어 번호가 불려 들어갔는데, 교수님은 아직 옆방에서 첫 번째 환자를 진료하고 계셨다. 그 기다림의 짧은 시간 동안 오만가지 생각이 들었다. 혹시나 삼중음성유방암이 오진이었다는 말씀을 해주시지는 않을까 살짝 헛된 희망도 가져봤다.

 

교수님이 들어오자 호흡을 가다듬었다. 곧 사형선고를 받을 사람처럼 고개를 떨구고 있었는데 역시나 내 암이 삼중음성유방암이 맞단다. 크기는 초음파상으로는 2.3cm였지만, 세종충대병원에서 찍은 MRI 판독결과 큰 혹은 3.3cm, 그 주변의 작은 암세포들까지 다 아우르면 5.7cm로 봐야한단다.

 

이건 또 무슨 소리인가. 5.7cm? 심지어 겨드랑이에 보이는 이상세포는 따로 조직검사를 해봐야 한다고 했다. 갑자기 평소 잘 쓰지도 않던 설상가상이니 첩첩산중이니 하는 별 시덥지 않은 단어들이 마구 떠올랐다. 이미 내 곁에 있던 동생은 치료하면 나을 수 있는 거냐고 또 울먹이기 시작했다. 그동안 분명히 삼중음성유방암이라는 소리를 여러번 들었으면서도 애써 외면하고 싶어했던 마음이 다 들켜버렸다. 더더군다나 5.7cm라고? 그 크기의 무게가 확 와닿아 질겁을 했는지도 모른다.

 

나는 또 담담하게 나 자신을 객관화시키고 있었다. 치료하면 살 수 있냐 울면서 의사선생님께 묻고 있는 동생이 오히려 당황스러웠다. 다행히도 의사선생님은 그냥 담백하게 라고 짧게 대답하셨다. 그 말이 나를 안심시켰고, 정신을 차릴 수 있게 만들어줬다. 몇 기 정도로 봐야되냐고 여쭸더니 세종충대병원에서 이미 들었듯이 2기로 보이고 만약 겨드랑이 림프절로 전이 됐다면 3기가 된다고 진단했다.

 

선항암은 세종충대병원에서

 

이제 선택의 여지는 없었다. 나는 무조건 선항암을 해야한다. 항암은 다른 과 의사가 해줄거라 하시길래 바로 교수님께 '제가 세종에 살아서 세종에서 항암을 하고 싶다'는 말씀을 드렸다. 또 담백하게 그래도 된다고 하셨다. 혹시 서울대와 항암치료의 차이가 있는지 물었더니 크게 다르지 않을 거라고 대답하시면서 다시 한번 서울대병원인지 세종충대병원이지 선택해야한다고 재촉의 눈빛을 건네셨다. 살짝 의아해하시는 것 같기도 했다. 그 짧은 시간이 굉장히 길게 느껴졌다. 아직 경험해보지 못한 일이라 누가 좀 옵션 없이 선택해줬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무조건 서울대병원에서 선항암을 해야 한다고 했다면 고민이 없었을텐데 다시 옵션이 생긴 마당이라 괴로웠다. 또 선택의 순간! 내 대답만 기다리는 바쁜 의사선생님을 두고 더 오래 끌 수가 없었다. 짧은 순간의 선택이었지만 차분하게 그냥 세종에서 받겠다고 대답했다.

 

이어, 교수님이 세종충대병원에서 2차 선항암을 하고 나서 다시 보자고 말씀하시고 한 결과를 11월 29일에 유방암 치료 후 피로 암 수치를 확인할 수 있는 연구를 진행하고 있다며 연구 참여를 권유하자 그렇게 하겠다고 말씀드리고 조용히 나왔다. 빠르게 전원 조치가 취해졌다. 연구참여 동의서를 쓰고 연구용 채혈을 한 후 겨드랑이 조직검사 일정을 잡고 수납하고 진료협력센터로 가서 세종충대병원 전원을 의뢰했다.

 

 

세종충대병원으로의 전원, 낙동강 오리알?

 

그런데 맙소사. 서울대병원 진료협진센터를 통해 확인한 결과, 세종충대병원 혈액종양내과 외래 일정이 113일에야 난단다. 이런. 당장 암덩어리가 커가고 있는데 세종에서 두 달이나 그냥 의미없이 있어야한다고? 이거 괜히 전원해달라고 했다가 낙동강 오리알 신세가 되어서 항암만 늦춰진 건 아닌가 후회막심이었다.

 

유방암 환자인데 왜 세종충대병원에서는 혈액종양내과로 안내하지? 이 때까지만해도 이 정도로 무식했다. 나는 당시 내가 세종충대병원에서 선항암을 하게 되면 당연히 이전에 암판정을 해줬던 여성센터 유방외과로 전원되는 줄 알았었다. 근데 그게 아니었다. 외래는 무조건 혈액종양내과로 간단다. 수술이 아니고 약을 쓰는 항암이니까 사실 유방외과로 전원될 처지가 아니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당연한 것을, 그때는 그 정도의 상식도 없었고 정말 판단력 실종상태였다.

 

여튼 상황은 더욱 급박해졌다. 결국 무조건 여성센터로 전화해서 사정을 얘기하고 전원을 받아주실 것을 부탁드려보기로 했다. 세종충대병원은 역시 친절했다. 원래는 안되는 것이었는데 내가 오랫동안 세종충대병원에서 검사를 진행해서 그랬는지 일단 와보라고 말씀해주셨다. 그리고 서울대병원에 있는 동안 전화로 다음주 월요일인 25일 겨우 예약을 잡아놨는데, 그래도 불안한 마음이 있어 일단 KTX로 도착하면 바로 세종충대병원으로 가보는 게 낫겠다 싶었다

 

삼중음성유방암 연구조사 참여

 

급하게 세종으로 돌아가려고 서울대병원에서 그동안 진행했던 의료기록사본과 영상기록을 떼고 있었는데 갑자기 의사라며 나를 찾는 전화가 왔다. 혹시 아직도 서울대병원 내에 있으면 간호사실 앞으로 오란다. 방금 만나뵜던 서울대병원 교수님이 불렀나 싶어 부리나케 뛰어갔더니 어떤 젊은 의사 선생님이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또 연구에 참여해달라는 부탁을 하려고 나를 소개받았단다. 내 암이 혹시 재발할 경우 어떤 약을 쓰는 게 좋은지 소위 맞춤형 약재를 찾기 위한 연구라고 설명했다. 마치 내 데이터를 잘 놔뒀다가 나중에 재발하면 쓸 수 있는 것처럼 얘기하시길래 앞서 참여했던 연구처럼 또 가볍게 피를 뽑는 건가 생각하고 흔쾌히 참여에 응했다.

 

그런데 갑자기 침대에 눕히더니 내 가슴 암덩어리에서 조직을 떼어내는게 아닌가. 멍하니 있다가 또 조직을 뜯겼다TT 그제서야 연구 결과를 개인적으로 알려주냐 물었더니 그렇지는 않단다. 그럼 서울대에 데이터가 남냐 그랬더니 이게 꼭 성공한다는 보장이 있는 건 아니라 장담할 수 없단다. 그럼 난 왜 했니? 그냥 연구 마루타였던 거야?

 

살짝 짜증이 났으나 인류를 위해 희생했다고 좋게 생각하고 나왔는데, 그 조직을 떼어 낸 이후부터 암이 부어오른 듯 커졌고 다음 날까지도 짜르르짜르르 순간순간 아프기까지 했다. 그리고 오랫동안 그 부분에 염증이 생겨서 괴로웠다. 며칠 내내 괜히 조직을 떼어냈다가 암만 더 커진게 아닌가 후회하며 보냈었다.

 

여튼 나는 전원 서류를 몽땅 들고 다시 세종충대병원에 가서 간호사님께 사정 설명을 했다. 좀 더 외래일정을 앞당길 수 있는지 물었더니 오히려 PET 촬영을 하지 않았다며 그것 먼저 하는 게 낫겠다고 조언하며 얼른 일정을 잡아주셨다. 내가 항암만큼은 세종충대병원을 선택한 이유가 바로 이런 세심한 배려였다. 환자가 케어받고 있다는 존중감을 느끼게 한다는 것. 정말 세종충대병원 간호사님께 거듭 감사한 마음이 든다.

 

어쨌든 역시 부지런하게 움직였더니 뭐 하나라도 일정을 빨리 잡는구나 생각하고 흐믓했다. PET-CT검사도 전이여부를 검사하는 거란다. 찍는 건 좋은데 또 전이됐다고 하면 어쩌지? 정말 더 이상은 심각해지고 싶지 않은데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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