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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중음성유방암 투병일기

[삼중음성유방암 투병일기5] 서울대병원 첫 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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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3년 9월 8일: 서울대병원 첫 외래, 채혈·흉부영상, CT/MRI/조직슬라이드 재판독

 

9월 8일 아침 7시 제법 차진 아침 바람을 맞으며 서울로 향했다. KTX를 이용하고 지하철을 탔더니 서울대병원까지 2시간이면 도착했다. 서울대병원 유방암센터는 대한외래센터 건물 지하 3층에 위치하고 있었다.

 

서울대 진료카드를 만들었고 병원 도착을 알리며 예약시간이 잡혔다. 앞서 예약된 환자들의 상담이 길어지는 건 이곳에서 다반사로 이루어지는 일 같았다. 허망한 표정을 지으며 가족들과 어두운 모습으로 나오는 환자들에게 연대감이 느껴졌다. 그렇게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사형선고를 받게 될 죄수의 심정으로 불안하게 앉아 있었다.

 

예약시간은 9시 30분이었지만 10시가 거의 다 되어서야 내 번호가 불렸다. 그렇게 유튜브로 첫 대면을 했던 서울대 교수님을 만났다. 키가 크고 신뢰감이 가는 젊은 의사선생님. 담백하고 친절했다. 세종충대병원에서의 검사과정을 쭈욱 설명해드렸더니 옆 침대에 누워보란다. 왼쪽 가슴을 여러 번 눌러보는 촉진을 하고 나서 최초 진단인 삼중음성유방암이 맞는지부터 다시 확인해봐야 한다며 검사 후 20일 날 보자고 했다. 그게 서울대병원 교수님과의 ‘세상 간절한 긴 기다림과 짧은 만남’이었다.

 

20일 외래까지 내가 서울대병원에서 다시 검사해야 할 항목은 세종충대병원에서 진행한 CT, MRI를 제외하고 채혈/소변 기본검사, 심전도검사, 폐영상촬영, 유방촬영, 유방초음파, 뼈스캔이었다. 그리고 병리과에 세종충대병원에서 갖고 온 조직슬라이드를 접수해서 다시 검사해볼 예정이다.

 

교수님의 진료 후 중증환자 서명을 하고 나서 통합예약센터에 가서 검사일정을 잡았다. 그제서야 그곳이 서울대병원이라는 것을 체감했다. 동네 내과만 가도 그날 바로 할 수 있는 유방촬영과 유방초음파 검사일정이 내년 5월밖에 나지 않는다 했다. 그나마 뼈스캔은 외래 당일인 20일에 잡혔다. 채혈/소변 기본검사, 심전도검사, 폐영상촬영만 당일 쉽게 이루어질 뿐 검사일정 잡는 게 전쟁터인 곳이 서울대병원이다.

 

 

어이가 없었다. 20일 외래인데 그 전에 유방촬영과 유방초음파가 안된다면 어쩌란 말인가. 물어봤더니 콜센터로 전화해서 매일매일 취소된 일정을 확인해보라고 했다. 언제쯤 전화하면 좋은지 기약도 없다고 했다. 그냥 재수 좋으면 바로 일정이 날 수도 있어서 시간되는 대로 무조건 전화해보는 수밖에 없단다. 인터넷에서 취소하는 걸 확인할 수도 없고 오직 전화로만 해야 했다. 어떻게 이런 예약시스템이 IT강국인 대한민국 국내 최고 병원에서 이루어지는 일인가 황당했다. 전이가 의심된다는 데 내년 5월에나 유방초음파가 된다는 건 그냥 죽으라는 얘기 아닌가.

 

그때부터 다시 서울대병원 검사일정에 대한 집착에 들어갔다. 30분, 1시간... 기다릴 새도 없이 전화를 돌렸고 여러 콜센터 직원들과 통화하며 사정했다. 그랬더니 또 간절함이 통했다. 전혀 기대하지 않고 그냥 습관처럼 전화를 했는데 갑자기 10월 2일 날짜가 났다고 했다. 엥? 내년 5월에서 올해 10월로 무려 7개월을 앞당긴 순간이었다.

 

예약시간을 앞당길 수 있다는 가능성이 확인되니 그 다음부터는 모두 격파 게임을 하듯 전화를 돌려댔다. 또 세종시로 돌아오는 KTX에서의 통화에서 갑자기 9월 13일에 일정이 반짝 떴단다. 그 때의 희열이란! 그렇게 시작된 콜센터 전화놀이로 뼈스캔 일정까지 9월 11일로 앞당겼다.

 

그제서야 서울대병원의 모든 일정잡기가 내 병을 치료하고자 하는 간절함이 어느 수준인지 테스트해보고 있다는 걸 알게 됐다. 그래. 재밌다. 이런 소소한 성취감을 가지고 매일매일 그 순간순간 주어진 것에 최선을 다하며 살자. 내 유방암이 또 머리로만 알았던 삶의 기본 철학을 이렇게 정확히 체험으로 깨우쳐주는구나 뒤늦은 게 후회돼 탄식하듯 내뱉었다.

 

여기까지가 오늘 아침 7시부터 오후 5시 세종시에 도착하기까지 일어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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