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 오래간 만에 블로그에 들어왔더니 오래 전에 올린 자궁근종 수술후기에 비밀댓글이 하나 달려있었다. 나와 같은 빈혈 증상으로 곧 개복수술을 하게됐는데 무섭지만 내 글을 읽고 힘이 난다는... 지난해 10월 수술날을 잡았다고 했으니 일정대로 하셨다면 이미 개복수술을 하셨겠다. 좀더 일찍 들어와서 댓글을 확인했다면 한번 더 용기를 드리는 답글을 드렸을텐데 그러지 못해 아쉬웠다. 아마 그분도 지금쯤은 나처럼 해야될 숙제를 해치운 후련한 기분으로 상쾌하게 생활하고 계시지는 않을까. 내가 그러고 있으니 그냥 그렇게 믿고 싶다. 여튼 나처럼 막연한 두려움에 떨고 있을 분들을 위해 일부러 시간을 내 다소 장황한 후기를 남겼더랬는데, 그래도 읽고 용기 내시는 분들이 계시는 것 같아 큰 보람을 느낀다.
내가 개복수술을 한 지는 이제 꼬박 1년하고도 2개월이 지났다. 지난번 후기에서 남겼듯 수술 6개월 후 검진에서 2.2cm의 근종 하나가 다시 발견됐더랬다. 당시 연세세브란스 집도의 선생님께서 말씀하시길, 6개월 후 동네병원에서 다시 검사를 해보고 그 근종의 크기가 5cm 이상으로 커져있으면 다시 당신한테 오라 하셨었다. 그 후로 다시 근종 하나와 함께 생활하고 있다는게 여간 찜찜한게 아니었지만 수술 이후 생리량이 확연히 줄어들었고 그로 인해 빈혈수치도 정상으로 돌아온 상황이라 크게 걱정하지는 않았더랬다. 이쯤 되니 의사 선생님 말씀을 무시하고 그냥저냥 괜찮겠지 하면서 재검진을 미루고 싶은 마음이 굴뚝 같았다. 아니 어쩌면 다시 재검을 받았다가 또 그 근종 하나가 5cm를 넘겼다는 말을 듣고 싶지 않았던 게 아니었을까. 그렇게 웬지 검진일정을 하루라도 미루고만 싶었다.
그런데 운명인 것일까. 그동안 비교적 안정적으로 자리잡았던 생리주기가 갑자기 이상 증상을 보이기 시작했다. 누군가 코로나19 예방백신 1, 2차 접종을 한 이후 생리주기 이상반응이 보인다 하더니 내가 그런 상황에 처한 것 같았다. 백신 접종 이후 흐릿한 생리혈이 찔끔찔끔 보이는게 근 2-3주 간 계속됐다. 이게 백신 여파인지 자궁근종 재발과 관련된 것인지 종잡을 수가 없으니 무지에서 오는 걱정이 슬금슬금 밀려들기 시작했다. 더이상 재검을 미뤘다간 이 걱정으로 인해 인생 종치겠다 싶어서 드디어 결단을 내렸다. 그 근종 놈이 또 커져있으면 어쩌랴. 그놈하고 같이 살던 죽던, 난 또한번 더 수술만은 못한다 굳게 마음먹고 지난 12월, 세종충대병원 산부인과를 예약해서 검진을 받았더랬다.
나의 병력 운으로 말할 것 같으면, 암수술 한 번, 자궁근종 개복수술 한 번, 어린 나이에 이처럼 큰 수술을 두 번이나 했으니 지지리도 복도 없지만, 다행스럽게도 의사선생님 운은 타고 난 것 같다. 늘 훌륭한 의사선생님들을 만나 지금까지 용케 살고 있으니 참 감사한 일이다. 이번에도 가벼운 검진이긴 했지만, 역시 느낌이 좋은 선생님을 만났다. 내 다시는 수술 못한다 이를 악물고 전투태세로 진료실로 들어갔건만, 내 걱정이 무색할 만큼 심쿵하는 검진결과를 들었다. 검사 결과 6개월 전과 같이 2.2cm 근종 하나가 그대로 발견됐단다. 분명히 조금이라도 커져있을 거라 생각했는데, 다행히 변화없이 그 크기 그대로 남아있었다. 선생님 왈, 내 나이에 앞으로 임신할 계획이 없다면 근종 하나 둘 갖고 사는 건 크게 문제가 되지 않으니 걱정하지 말란다. 설사 5cm가 넘어가도 완경이 가까웠기 때문에 예외적인 상황이 아니라면 그냥 관리만 하면서 지내도 무방하다는 얘기였다. 다만, 관리는 해야되니 1년 후에 다시 검진받으러 오란다. 어찌나 편안한 톤으로 안심을 시켜주시던지 이제 비로서 자궁근종으로부터 완전히 해방을 맞았다는 환희를 느꼈다.
나와 같은 상황으로 이 글을 읽고 있는 분들이 계실거라 생각한다. 사실 나도 수술 전에 여기저기에서 많은 정보들을 접했다. 개복수술에 대한 부정적인 피드백들이 많았지만, 빈혈수치를 잡지 않으면 안되는 상황이라 수술을 피할 수 없었고, 다발성이라 개복을 해야한다하니 나로서는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차라리 선택의 여지가 없었던 게 의사결정을 내리기에는 훨씬 편했는지도 모르겠다. 4개를 떼내려다 11개를 떼어내는 성과(?)를 냈으니 불행 중 행운이었다고나 할까. 누군가 내게 자궁근종 수술에 대한 조언을 구한다면, 나는 이렇게 얘기해주고 싶다. 미루지 말고 빨리 병원에 가서 검진을 받아야한다고. 그리고 수술을 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면 두군데 정도 믿을 만한 큰 병원에 가서 상담을 받아보시라고. 서로 다른 치료법을 얘기할 수도 있으니까. 그리고 일단 수술을 하게됐다면 운명에 맡기고 용기를 내서 빨리 일정 잡고 하시라고. 그 시간이 결코 헛되지 않을 것이기에.
자궁근종 수술 후 1년 2개월. 이제 그 막연하고 두렵고 치열했던 시간들이 언제 그랬냐는듯 흐릿한 기억으로만 남아있다. 배 아래 선명한 붉은 줄과 여전히 내 자궁에 살고 있을 근종 하나가 내 수술 이력을 증명해주고 있을 뿐. 그래도 누군가 주위에서 자궁근종에 대한 얘기를 하면, 생생한 내 무용담을 술술 늘어놓고 있는데, 이게 완전히 경험에서 우러나온 스토리라 청중의 집중력이 참 좋다.^^ 그만큼 자궁근종으로 걱정하고 있는 친구들이 참 많다는 얘긴데, 어여 의학이 발달해서 먹는 약으로 쉽게 치료가 되거나 백신으로 근종을 원천적으로 막아내기를 희망해본다.
관련글 보기
2021.02.10 - [정보나눔] - [자궁근종 수술후기 1] 자궁근종 개복수술 이유
[자궁근종 수술후기 1] 자궁근종 개복수술 이유
★ 지금부터 연재하는 [자궁근종 수술후기]는 2020년 11월경 연세 세브란스병원에서 개복하 자궁근종 절제술을 받은 동생이 직접 정리하여 공유해드리는 생생한 체험기입니다. 여성질환으로는
muni.tistory.com
2021/02/11 - [정보나눔] - [자궁근종 수술후기 2] 개복하 자궁근종 절제술 체험
[자궁근종 수술후기 2] 개복하 자궁근종 절제술 체험
★ [자궁근종 수술후기]는 2020년 11월경 연세 세브란스병원에서 개복하 자궁근종 절제술을 받은 동생이 직접 정리하여 공유해드리는 생생한 체험기입니다. 앞선 글에서 얘기했듯, 수술날짜를 기
muni.tistory.com
2021/02/11 - [정보나눔] - [자궁근종 수술후기 3] 자궁근종 개복수술 이후의 변화
[자궁근종 수술후기 3] 자궁근종 개복수술 이후의 변화
★ [자궁근종 수술후기]는 2020년 11월경 연세 세브란스병원에서 개복하 자궁근종 절제술을 받은 동생이 직접 정리하여 공유해드리는 생생한 체험기입니다. 수술을 한 지 어느새 두달 반이 흘렀
muni.tistory.com
2021.06.25 - [정보나눔] - [자궁근종 수술후기 4] 6개월 후 검사결과
[자궁근종 수술후기 4] 6개월 후 검사결과
어느새 자궁근종 개복수술을 한지 6개월이 지났다. 그동안 가장 눈에 띄는 변화는 역시 생리양이다. 입는생리대 소비량으로 설명하자면, 수술 전에는 1주일을 꼬박, 입는생리대 15개, 중소형 생
muni.tistory.com
'건강정보' 카테고리의 다른 글
3차 백신 부스터샷 접종 후 증상(1,2차 모더나, 3차 화이자 접종) (0) | 2022.03.01 |
---|---|
코로나19 3차 백신 부스터샷 접종후기 1(1,2차 모더나, 3차 화이자 접종) (0) | 2022.02.26 |
[자궁근종 수술후기 4] 6개월 후 검사결과 (0) | 2021.06.25 |
[자궁근종 수술후기 3] 자궁근종 개복수술 이후의 변화 (4) | 2021.02.11 |
[자궁근종 수술후기 2] 개복하 자궁근종 절제술 체험 (0) | 2021.02.11 |